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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문학의 대표작, <19호실로 가다>

by 하양 고양이 2025. 7. 12.

19호실로 가다 표지 이미지
<19호실로 가다> 표지 이미지입니다.

 

 

 

여성들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 소설

<19호실로 가다>는 학생 때 페미니즘 수업에서 읽었던 소설입니다. 당시 이 소설을 읽고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사회의 규범 속에서 여성이 얼마나 억압받고 있는지, 왜 편하게 쉴 공간이 없는지를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인상적이었던 소설이기도 합니다. 남성이 여성이 받는 억압과 차별, 사회적 구조에서 오는 불안감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여성주의 책을 몇 권 읽고, 여성주의 세미나에 참가하고, 수업을 듣고, 몇 번 여성주의 집회에 참가한다고 남성이 태어날 때부터 누려서 몸에 자연스럽게 체화된 남성의 삶을 벗어던질 수 없습니다.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자부하던 지식인들이 실제 생활에서 여성 혐오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읽거나 공부하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19호실로 가다>를 추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호실로 가다>(To Room Nineteen)는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이 1963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로, 중산층 여성의 내면적 억압과 자아 분열을 주제로 한 심리적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중년 여성인 수전 로울랜드(Susan Rawlings)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수전은 남편 매튜와 함께 네 자녀를 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주부입니다.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완벽한 삶처럼 보이지만, 수전은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혼란과 공허에 빠지게 됩니다.
수전은 남편과의 관계에서 점점 거리를 느끼게 되며, 특히 매튜의 외도와 거짓말은 그녀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들은 가정에서의 역할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감정을 쉽게 표현하거나 현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고, 수전도 그 예외는 아닙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집안일과 육아, 사회생활을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좋은 아내’로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내면에서 커지는 허무함과 고립감은 점차 그녀의 정신을 잠식합니다.
그 과정에서 수전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찾기 위해 런던 시내의 어느 호텔 19호실을 주기적으로 빌려 홀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 방에서만큼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이 방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닌 현실 도피의 공간으로 변하고, 수전의 고립은 심화됩니다. 결국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압박과 자아 분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당시 여성들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며 그들이 사회적 규범 속에서 어떻게 억압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9호실로 가다>는 수전의 이야기를 통해 ‘자아 상실’이라는 주제를 강하게 드러내며, 한 개인의 자유와 정체성이 사회적 틀 안에서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그려냅니다.

 

 


20세기 중반 여성의 정체성과 자유, 사회적 억압을 다룬 작품

<19호실로 가다>는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의 대표작 중 하나로, 심리적 리얼리즘과 사회비판적 시각이 뛰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작품은 20세기 중반 여성의 정체성과 자유, 그리고 사회적 억압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매우 섬세하게 다룹니다. 특히 여성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도, 시대적 맥락을 놓치지 않는 균형 잡힌 서술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가장 큰 평가는 여성의 자아 찾기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비판적 시각입니다. 수전 로울랜드는 당시 사회가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제시한 ‘이상적인 아내이자 어머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만, 그러한 삶 속에서 점점 자신을 잃어갑니다. 그녀가 19호실을 찾게 되는 과정은 곧 자신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며, 이는 당시 독자들에게 매우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단순한 페미니즘 소설을 넘어선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수전의 고립과 자아 분열은 단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이 겪을 수 있는 문제로 확대됩니다. 누구나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자신만의 ‘19호실’을 찾아가고 싶은 욕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보편성 때문에 <19호실로 가다>는 성별과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문체와 구성에서도 도리스 레싱의 탁월함은 돋보입니다. 그녀는 절제된 문장과 냉정한 시선으로 수전의 일상을 묘사하며, 독자에게 직접적인 감정 전달보다는 내면의 소리를 조용히 들려주는 방식으로 감정의 깊이를 더합니다. 특히 호텔 19호실이라는 상징적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자아 탐색과 해방, 동시에 파멸의 장소로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결론적으로 <19호실로 가다>는 시대를 앞선 문제의식을 지닌 작품으로, 인간의 존재, 자유, 정체성, 고립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단편이지만 그 안에 담긴 함의는 장편 못지않은 무게를 가지며, 독자에게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상가이자 작가, 도리스 레싱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은 1919년 페르시아(현재의 이란)에서 태어나 아프리카 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에서 성장한 영국 작가입니다. 그녀는 20세기 후반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2007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그 문학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수상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그녀를 “여성 경험을 서사적으로 탐구한 역동적인 문학의 대변자”라고 평가하였습니다.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자전적 요소와 철학적 사유가 깊게 깔려 있으며, 인간 심리와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특징입니다. 초기 작품에서는 식민주의와 인종 문제에 관심을 두었고, 중기에 접어들면서 여성 해방, 정신분석, 초현실주의, 심리학, 과학 소설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확장시켰습니다. 대표작으로는 <금색 노트>(The Golden Notebook), <풀잎은 노래한다>(The Grass is Singing), <19호실로 가다>(To Room Nineteen) 등이 있습니다.
그녀는 특히 여성의 심리와 삶의 조건을 정교하게 분석하여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금색 노트>는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그녀가 단순히 ‘여성 작가’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어왔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레싱은 공산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방했다가 나중에 이를 철회하는 등 자신의 사상 변화도 솔직히 드러낸 작가로, 일관된 정치성과 지식인의 자세를 유지해 왔습니다.
노년기에는 사회적 주제에서 벗어나 인류의 미래와 영성, SF적 상상력에 집중하는 작품도 집필하였습니다. 이는 도리스 레싱이 특정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유를 추구한 작가임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문학은 시대를 관통하며 오늘날까지도 현대인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3년 그녀가 타계했을 때, 세계 문단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목소리를 잃었다고 애도하였습니다.
도리스 레싱은 단순히 ‘작가’가 아닌, 사상가이자 시대의 목격자로서, 문학을 통해 삶의 본질을 꾸준히 탐색해 온 인물이었습니다.